어딜 가던 항상 카페를 찾는다.
커피 맛은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앉아서 기다리고 맛을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니
대체로 인테리어와 로고 디자인, 일하는 사람들의 아우라 같은 것을 살피는 편이다.
나이 때문에 다들 힘들거라 위로와 약간의 조롱이 섞인 걱정을 보낸 것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다양한 유형의 학교에 합격했다.
나 스스로도 그 위로와 조롱 섞인 걱정을 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
우스갯소리로 학교에 합격하는 것보다 집 구하는 게 훨씬 어렵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했는데 90프로는 진심이었다.
라이프치히에서 뉘른베르크까지 빠른 기차로 두시간반. 하지만 가난한 유학생 부부가 집을 구하기 위해
매주 다니기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어서 4시간반정도 걸리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라이프치히에는 LWB라는 시에서 운영하는 부동산회사에 문의를 하고 조건이 맞으면
대체로 집을 잘 주는 편이었는데 뉘른베르크는 그런 회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조건이 좀 까다로웠다.
근 한달을 그렇게 왕복하며 간신히 집을 구했는데
32제곱미터짜리 옥탑방이었다. 창문도 기울어져 있어서 나름 낭만이 있는 집이었지만
겨울에 캠핑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춥고
여름엔 목이 마를 정도로 더운 좁고 아름다운 집이었다.
너무 좁고 기울어진 천장에 하루가 멀다 하고 머리를 부딪혔지만
집 어느 곳에서도 서로를 볼 수 있다고 좋아했다.
집주인은 정말 양아치.
나름 탁트인 개방감도 있었어서 나쁘지 않았다.
그 뒤로 저 개방감이라는 조건이 내가 집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뉘른베르크 근교에 Zirndorf, 정확하게 말하면 Oberasbach라는 작은 도시가 있는데
플레이모빌 개미지옥이 있는 작은 소도시이다.
몇 번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 차도에 Rösterei라는 너무나 자극적인
적어도 나에게는 너무나 자극적인 광고판이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있었다.
지나칠 수 없어서 잠깐 들렀다.
뭐랄까 공장 같은 임시 건물을 반으로 잘라 반은 커피를 볶는 공장으로
또 반은 개방감이 정말 내가 살고 싶을 정도로 대단한 카페로 운영되고 있었다.
뉘른베르크에서 커피 좀 한다는 집들의 공통점이 앞서 포스팅했던 Machhörndl 출신들이라는 것이다.
여기도 마찬가지여서 바리스타 중 많은 사람들이 Machhörndl에서 나와 창업한 카페인데
아프리카계 원두는 없고 아메리카 원두들만 취급한다는 특징이 있다.
지금까지 6번정도 방문했는데 역시나 주로 주문한 음료는 핸드드립과 라떼.
처음 방문했을 때는 바리스타 혼자서 주문받고 결재하고 커피 만들고 앉아있는 자리까지 갖다주느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손님 많고 바리스타가 적은 카페는 적어도 그 시간대에 맛있는 커피를 기대하기 힘들고, 특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핸드드립을 마시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바리스타에게 미안한 마음을 살짝 접어두고 맛을 봤을 때, 뭐랄까 바리스타가 바빴던 흔적들이 좀 보였다.
그 이후부터는 다행히도 손님들도 별로 없었고 바리스타들도 그렇게 바쁜 상황들이 아니었어서
커피 퀄리티도 좋았고 계속 꾸준히 좋은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어디에 앉아도 탁 트인 개방감과 편안한 소파에 앉아 커피 한잔 하는 게 참 여유롭고 좋았다.
역시나 괜찮은 카페에 가면 원두를 하나 픽 해오는데 마이크로랏이라는 글귀만 보면 홀린 듯 구매.
손재주 없는 내가 내려도 꽤 괜찮은 맛이었다.
계산을 하면서 바리스타랑 커피에 관한 얘기나 테크닉에 관한 질문을 하곤 하는데
내가 이전에 내리던 방법과 많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같은 방법으로 시도를 해봤는데
결과물이 꽤 괜찮았다.
이러면서 또 배운다.
roestkaffee Origins GmbH
Zwickauer Straße 8,
90522 Oberasbach
친절한 바리스타, 맛있는 커피
깨끗한 화장실, 그리고 무엇보다 계속 있고 싶은 개방감
하지만 커피만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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