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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취미, 커피 12

Imola, Bologna 그리고 Stignani Competition 1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맛없는 커피. 거의 한 시간 반에 가까운 연착으로 예상보다 훨씬 늦게 볼로냐 공항에 도착했다. 착륙과 동시에 부랴부랴 짐을 챙겨 이몰라로 향하는 기차에 간신히 올랐고 그렇게 이태리에서의 첫날밤을 맞이했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는 생각보다 시내와 거리가 있어 항상 택시를 타야 했지만 거대한 대문에 도착하고 그 앞에 펼쳐진 어두운 산책로는 마치 어느 왕의 정원과 같은 위엄을 보여줬다. 주인 내외분은 너무 친절하셨고 무엇보다 머독이라는 늙은 개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던 것은 예전 같으면 일단 개가 있으면 마냥 좋고 이리저리 만져보고 쓰다듬었을 나였을 텐데 머독의 된장냄새에 감히 만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인 내외분들과 한참 연착과 일정에 관련한 얘기,..

Berliner Kaffeerösterei

인천 집에는 근처에 공원이 하나 있다. 정말 크고 아무것도 없이 한가운데에 호수가 하나 있고 후문 쪽에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작은 동물원도 있다. 어릴 때 꿈이 동물학자였던 나는 일단 동물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생각보다 관리도 잘돼 있는 크지는 않지만 평화롭고 괜찮은 동물원이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봄바람도 아른아른 불어 마음도 덩달아 아른거리고 가을이면 앙상해지는 자작나무가 애처롭다. 근처에 수영장과 헬스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센터도 있는데 그곳에서 선배들과 수영도 1년 가까이 다녔었고 근처 분식집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우리 부부의 주요 밤 산책 코스 중 하나였고 옆문 쪽 편의점에서 잠시 쉬어갈 때쯤 되면 멀리서 토실토실한 어미 고양이, 그리고 가끔 새끼 고양이들도 함께..

EspressoLab in Nürnberg

그래도 명색이 노래하는 사람인데 맨날 커피 관련 포스팅만 올린다고 눈치 좀 보인다. 요즘 들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회의를 가끔 느낀다. 한번씩 기운내서 달리다가도 또 한번씩 내가 하는 일이 맞는건가 하는 의문이 자신감이 피크를 찍을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온다. 여전히 매일같이 연습실을 찾고 시간을 쓰고 마음을 쓰고 있기는 하다. 다만 목표가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클 뿐이고 요즘들어 그 목표가 부질없거나 실현가능성이 없거나 혹은 내가 때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잦다. 각자가 가진 에너지가 중요하다는 걸을 요즘 부쩍 느낀다. 자주 가는 카페 중에 하나인 EspressoLab. 처음 이 카페에 왔을 때 몇가지 놀랬던 점들이 있었는데 한국의 카페디자인과 너무 비슷했고 아메리카노와 라떼가 너무..

홈커핑. 세번째 이야기

맛이라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이고 또 누군가는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 영역이라고 얘기하기도 하더라. 오이를 못 먹는 친구가 있다. 멀리서 냄새만 맡아도 식사를 거른다. 예민한 척 하지만 사실 전혀 예민하지 않은 걸 알고 있고 입은 짧지만 먹는 걸 좋아하는 친구인데 오이는 정말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사실 다른 맛들은 구분도 잘 못하는 초딩 입맛. 언젠가 오이를 쓴 맛으로만 인지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뭐 그런 면에서 보면 유전자의 영향이 있다고 볼 수 있겠지. 또 맛이라는 것이 컨디션을 타기도 한다. 산해진미를 갖다줘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먹지 못하고 먹어도 맛있다 느끼지 못한다. 처음 핸드드립을 접했던 건 2012년 정도였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아메리카노만 줄곧 마셨다. 나름 ..

홈커핑. 두번째 이야기

독일에서의 삶은 한국에서의 그것과 확실히 다르다. 느리고 여유있고 한가롭고 심심하다. 하지만 나의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뉘른베르크로 온 이래로 학교, 집 그리고 아르바이트하는 식당. 일종의 자습처럼 오전 8시반정도에 오전연습을 시작하고 이런 저런 수업들을 받고 혹시나 오후에 짬이 난다면 레퍼토리 연습. 집으로 돌아와 와이프와 저녁을 먹고 식당으로 출근해서 1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오는 삶이 3년반 넘도록 지속됐다. 심시어 마트는 8시에 닫아서 장볼 시간도 없었다. 물론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릴 때는 식당도 학교도 문을 닫아 집에만 있었고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해 교회로 연습을 다녔다. 독일에 온 이래로 가장 여유로운 한 때. 덕분에 그 기간동안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당시엔 의무적..

orko.cafe in Nürnberg

독일은 모든 것이 느리다. 라이프치히에 도착하고 며칠 뒤 아침 일찍 외출을 했다. 집 근처에 미용실이 있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간판을 달려는지 작업자 두명이 설치를 위해 뭔가 하고 있었다. 오후 4시 정도가 지나서야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미용실을 다시 지나쳤는데 간판은 그 자리보다 살짝 높은 자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더라. 한번은 살던 집 1층에 (독일식 땅층) 멕시코 음식점이 새로 들어서는지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다. 매일 같은 길을 오가며 언제나 완공이 될까 기다렸고 6개월쯤 지났을 때 마무리를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 앞에 사거리가 있는데 같은 자리를 뜯었다 매웠다를 2년을 반복하다가 이제서야 마무리를 했는데 무슨 공사를 왜 한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뉘른베르크 시내로..

홈커핑. 첫번째 이야기

아는 선생님은 모든 옷을 직접 만들어 입는다. "손재주가 좋으면 당연히 집에서 만들 수 있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들 생각만 할 뿐이지 천을 골라와서 재단을 해서 바느질까지 해서 옷을 만들어 입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원자재와 부자재의 가격이며 작업에 필요한 미싱, 줄자, 재단가위.. 이 모든 것을 구비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그 시간을 노동에 대한 비용으로 계산한다면 단순히 재주와 의지만으로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 모두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뿐이지 사실 어느 정도 계산을 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공산품을 사는거겠지. 우리가 하루종일 마주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이런 논리로 구입된 물건 혹은 서비스들이다. 차를 구입해 직접 운전을 하는 수고와 비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신선한..

틀린 커피?

좋은 것, 좋은 사람이라는 간단한 명제는 사실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누구에게 좋다 혹은 누구에게 어떻게 좋다 라고 조건을 명확하게 달아주면 조금은 더 쉬워질텐데. 세상에 틀린 커피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검색해서 굳이 찾아갔는데 커피가 내 맘에 안들면 거기가 틀린 커피지 뭐. 최근에 애써 굳이 시간내서 찾아간 카페 중에 내 취향과 맞지 않았던 카페들을 되뇌어 보자. Erlangen에 Rösterei라는 이름을 걸고 영업을 하는 카페였다. 처음 문에 들어섰을 때 너무 반갑게 맞아주는 직원들과 깔끔한 인테리어가 눈을 끌었다. 혼자 방문해서 다른 커피는 마셔볼 수 없었고 핸드드립 커피 중에 고를 수 있는 원두가 엄청 많아서 고민하던 중 나를 커피의 길로 눈을 띄어 주었던 에티오피아 시다모가 있길래 ..

Yellow Tile Coffee Project in Nürnberg

많은 일이 있던 이틀이었지만 차차 하기로 하고. 그동안 미뤄왔던, 가고 싶었지만 이상하리만치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갈 수 없었던 내 마음의 뉘른베르크 1순위 카페. Yellow Tile. 별점 높은 카페를 찾던 중 리뷰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5점 만점에 5점을 찍은 카페가 있어 궁금했다. 카페 마이스터에게 물어봤더니 요즘 급부상 중인 카페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곳 역시도 Machhörndl 출신의 바리스타들이 독립해 만든 카페. 앞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고 싶지만 적어도 이곳은 온전히 카페 얘기만 하고 싶다. 일반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인데 일단 커피 맛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 않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무엇보다 다른 카페보다 직원수가 많다. 직원수가 많다는 건 직원 개개인이 각자 맡은 일에..

왜 커피인가.

대학교 4년 동안의 모든 수업이 끝나고 마지막 영어딕션 시간. 교수님께서 그냥 마음에 있는 얘기들을 털어놔보라고 모두에게 물으셨다. 누군가는 신세한탄을, 누군가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또 다른 누군가는 불투명한 미래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결정을 후회했다. 벌써 10년도 훨씬 더 지난 기억이지만 그 중에 아직도 내 가슴 한편에 남는 한마디가 있다. "누구나 숨을 쉬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다. 그 쓸모없는 이산화탄소를 쓸모있게 사용하는 사람은 오직 노래하는 사람뿐이다." 커피에 집중하면서 문득 비슷한 생각이 종종 머리를 두드린다. 새콤하고 달콤한 과육이 아니라 텁텁하고 때로는 쓴 맛이 나는 씨앗. 모두가 의미없이 내버리는 씨앗을 숙성하고 볶고 갈아서 뜨거운 물에, 때로는 찬물에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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