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독일유학 16

Detmold Nürnberg Vorsingen

집에서 나온지 17시간째. 그중에 11시간은 기차를 타고 오며가며 이동 중이다. 그나마도 집까지는 아직 한시간을 더 가야한다. 갈 때 올 때 모두 2번씩 갈아타야 했고 갈아타는 횟수가 많다는 건 연결이 매끄럽지 않을 가능성, 곧 내가 타야할 기차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오늘도 여지없이 놓치지 않고 집에 빨리 들어가려고 뛰었다. 코로나가 우리를 훑고 간지 몇년인가. 이제는 코로나라는 단어가 진부해지고 그 시간동안 겪었던 일들을 나열하는 것도 지겹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겪었던 일, 지치지 않고 멈추지 않고 해왔던 일들이 늦게나마 마침표를 찍는 장면을 보곤 한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구글링에서 얻을 수 있는 에이젼시들, 교회들, 극장들에 메일을 수없이 돌렸다. 당시에 난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뭐라도 ..

Akhnaten 세번째 이야기 그리고 근황

8회 공연 전석이 매진되고 1회 연장되었다. 나는 여전히 뉘른베르크와 뮌헨을 오가고 있고 공연은 주 3회. 수,금,토. 내 분량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고 특별히 최고음이 높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음역이 높아 부담을 느끼다가 어제 5회차 공연에는 공연 직전까지 소리가 나지 않아 큰 걱정에 휩싸였다. 뭐 물론 무사히 잘 넘어갔고 만족하는 공연이었지만 오늘도 역시 힘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힘에 부치는 지금의 발성 대신 좀 우회할 수 있는 발성을 찾았고 그 방법으로 더 좋은 울림과 스테미너로 비교적 덜 지치면서 부를 수 있어서 역시 인간은 한계에 부딪혀야 성장한다는 것을 느낀다. 최근 음악 이외의 일도 바빠지면서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수면은 목의 회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먹는 것보다 ..

Akhnaten Premiere 아케나톤 첫 공연

언제나 공연 뒤에 밀려오는 아쉬움과 안도감. 특히 이번 첫 공연은 더 그랬다. 26일에 진행됐던 최종 리허설이 정말 엉망이었고 10분이 넘어가는 아리아의 가사가 갑자기 엉키며 머릿속은 블랙아웃. 템포 또한 내맘 같지 않았다. 템포에 관해서는 지휘자와 이미 수차례 얘기했던 터라 처음 도입부에서 템포가 엉키는 것을 듣고 마음이 울렁거렸다. 마지막 크리틱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막차에서 뒤죽박죽 엉켜버린 머릿속을 정리하고 마지막 하루동안 차분히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가사와 음악을 머릿속에 수없이 되뇌었다. 결과는 무사히 잘 마무리했다. 실수도 없었고 모두들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던 느낌이다. 모두가 만족했고 나도 만족했지만 난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발성의 문제를 다시 한번 마주했..

A midsummers night's dream B. Britten in Jena 1 (06.19-06.21)

와이프의 사업 확장으로 근 4개월 동안 정말 뻔한 표현이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쏟았고 이제 숨 좀 돌리나 싶은 때에 2년 전 코로나 기간에 오디션을 봤던 에이젼시에서 전화가 왔다. 6일 뒤에 브리튼의 오페라 한 여름밤의 꿈 공연이 있는데 연주하기로 되어있던 카운터테너가 코로나에 걸려 노래를 할 수 없으니 가능하면 와서 연주를 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순간 멍했고 "난 공부만 했고 공연을 해본 적도 없으며 외우지도 못했으니 일단 더 찾아보고 정 없으면 내가 하겠다."라고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가 악보에 눈을 쏟았다. 사실 이 오페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다른 에이젼시 오디션에서 혹시 급하게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은 뒤였는데 일단 무엇보다 ..

성실함에 대하여 2.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나의 경우엔 정해진 루틴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전날 밤에 내일 할 일을 생각하고 일어나야 하는 시간과 식사와 길에 쏟아야 하는 시간까지 계획을 한다. 보통은 잘 어긋나지 않지만 계획이 어긋나면 뱃속부터 차오르는 짜증을 견뎌야 하고 만에 하나 어긋난 원인이 타인이라면 정말 마음 속 깊숙이 그 사람을 증오한다. 이런 나를 스스로는 "성실하다"라는 제목을 달아 대견해하지만 문제는 삶의 목표가 그저 루틴을 지켜내는 성실함이 아니라는데 있다. 어디까지나 루틴은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일 뿐 목표에 이르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그 루틴을 깨고 새로운 루틴, 혹은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해야 하는데 목표에 대한 생각보다 ..

생각비틀기 2022.04.25

수고한 자, 다 내게로 오라

주변에서 학업과 생업에 치여 고생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게 느리다는 유럽의 삶에서도 난 마음 놓고 자본 적이 며칠 안된다. 지금은 졸업했지만 코로나로 인한 학기 자동연장으로 2년 반, 5학기를 다녔고 학위가 나오지 않아 1학기를 더 연장했다. 그 시간동안 당연히 난 일과 학업을 병행했고 일하느라 학업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항상 노심초사였다. 유학지에서 생계를 위한 일과 꿈을 위한 학업을 동시에 하는 친구들을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 생계도 좋고 돈도 좋지만 제발 일과 학업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학생이 하는 일은 늘 생계만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고 나의 꿈을 위한 학업과 접점이 전혀 없다. 일이 학업에 그 어떤 부분에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내..

생각비틀기 2022.04.20

성실함에 대하여

언제인지 분명하게 생각나진 않지만 인생 최고의 가치를 성실에 두었던 때가 있다. 물론 지금도 나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성실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요즘들어 정확히 말하면 2022년을 내딛으며 삶을 평가하는 척도가 조금 바뀌었다. 일단 몸이 너무 피곤하고 회복도 확실히 더뎌지면서 휴식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고 동시에 내가 지금까지 최고의 자산이라고 여겨왔던 성실함이 과연 나의 인생을 지탱하는 데 있어 그렇게 큰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성실하지 않은 것보다 성실한 것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지 않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하겠지만 문제는 내가 지금까지 그 성실이라는 테마를 너무 크게 지켜오면서 놓친 것들, 그리고 간과한 것들이 너..

생각비틀기 2022.04.19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봄비인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며칠째 비가 내린다. 비가 오기 전에는 4월이 봄이라는 걸 잊게 만드는 눈과 추위가 찾아왔었고. 지지난 수요일부터 몸상태가 좀 안 좋았다. 코로나 시대가 온 이후로 마스크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흔한 감기 한번 안 걸리고 잘 버텨왔는데 열이 많이 났고 다행히도 기침은 없었다. 그동안 너무 지쳤었나 보다 하고 모든 걸 멈추고 쉬었다. 매일 자가진단 테스트도 잊지 않았고 음성이 나오는 걸 보며 안도했다. 사실 와이프는 증세가 조금 더 일찍 시작됐다. 한 3일 정도 먼저 열이 올랐고 증세가 좀 완화될 때쯤 내 증세가 시작됐다. 열이 39도 가까이 오르는 걸 보면서 내가 열심히 살기는 진짜 열심히 살았구나 코로나는 아니라서 다행이네 하고 낄낄 댔지만 지난 토요일까지 증세가 완화되지 않..

좋은 집의 조건 1

한국 젊은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얼마나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지난날의 나를 돌이켜보니 한번 외출하면 저녁 이전엔 잘 안 들어갔던 것 같고 그나마도 밤이 아닌 저녁에 들어간 건 몇 번 안 되는 것 같다. 사실 그럴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춘 대한민국이 대단한 거지.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운 건 야근을 하고 있는 회사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웃기지만 슬픈 농담 같은 진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24시간 편의점이 동네 구석구석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고 시내엔 24시간 하는 카페가 불을 밝힌다. 내가 독일 나오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새벽까지 하는 대형마트도 많았다. 새벽에 산책 삼아 장보는 것도 큰 재미였다. 물론 이런저런 이유들로 이제는 그런 대형마트들이 더 이상 없지만 아직도 24시간 불..

Berliner Kaffeerösterei

인천 집에는 근처에 공원이 하나 있다. 정말 크고 아무것도 없이 한가운데에 호수가 하나 있고 후문 쪽에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작은 동물원도 있다. 어릴 때 꿈이 동물학자였던 나는 일단 동물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생각보다 관리도 잘돼 있는 크지는 않지만 평화롭고 괜찮은 동물원이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봄바람도 아른아른 불어 마음도 덩달아 아른거리고 가을이면 앙상해지는 자작나무가 애처롭다. 근처에 수영장과 헬스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센터도 있는데 그곳에서 선배들과 수영도 1년 가까이 다녔었고 근처 분식집에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우리 부부의 주요 밤 산책 코스 중 하나였고 옆문 쪽 편의점에서 잠시 쉬어갈 때쯤 되면 멀리서 토실토실한 어미 고양이, 그리고 가끔 새끼 고양이들도 함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