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음대 유학준비

조언 구하기 그리고 남의 말 믿지 않기.

Das Leben ist zu schwierig 2022. 4. 3.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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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생활을 준비함에 있어
그리고 인생전반에 걸쳐 대부분.

모르는 세계에 발을 들이거나
하다못해 뭘 하나 사려고 해도
주변에 조언을 구한다.
최근에 TV 스틱을 하나 구매하려고 알아보는 중인데
혼자 연주가면 방에서 할게 많이 없고
어차피 일정 때문에 뭔가 크게 특별한 일을 할 수도 없다.
심심해서 TV를 켜면
딱히 볼 것도 없는데 채널만 많은
뭔가 빈껍데기 같은 방송들 뿐이다.

얼추 4-5개의 브랜드가 있고
전혀 만져본 적 없는 새로운 기계라
물어볼 데도 없고 유튜브에 검색해도
몇몇 특정브랜드 홍보 같은 영상만 즐비하다.
주변에 경험해본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조언을 구해야겠지.

지금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과는
나이 차이가 꽤 나기 때문에
나에게 유학관련 문의를 직접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신 친한 동생들과 유학 관련 문의에 대한 얘기를
자주 전해듣곤 하는데
내 지인이라면 꼭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다.

내가 유학을 준비하던 2016-2017년에 내 친구들은
이미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거나
독일에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독일에 있는 친구들에게 그 나이에 유학을 나오다니 미쳤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독일어에 관한 조언을 구했는데
1. 독일어 문법만이라도 듣고 와라.
2. 어차피 한국에서 하는 거 소용없다. 오면 다 된다.
3. 이왕이면 B1를 따 와라.
이렇게 3종류의 조언을 들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어떤 조언을 듣는지 모르겠지만
난 처음에 1을 선택했다가
어느덧 3의 방향으로 향해 가고 있었고
B1를 따고 B2를 준비하다가 떨어지고
독일에 왔다.
결과적으로 B1 합격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내가 3의 길로 가지 않고
1이나 2의 방향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독일어로 독일어를 배우며
언어증명서 없어서 시험도 못 보고
시간은 시간대로 돈은 돈대로 쓰다가
한국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선택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겨우 독일어 자격증 하나 때문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쫓겨나야 한다면
좀 억울하겠지.

한국에서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독일에서는 조언을 들어야 할 때가 많다.
집을 구할 때, 비자를 받거나 연장할 때,
학교에 원서를 쓸 때 하다못해
마트에서 입맛에 맞는 음식 하나 살 때도
조언을 구한다.
유학에 관해서는 내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지만
집을 구할 때는 그래도 사람들이 내게 조언을 좀 구하는 편이다.

부동산 중개 사이트에 자기소개글을 최대한 친근하게 올리고
맘에 드는 집이 있으면 메일을 보낼 때
역시 최대한 친절하고 나의 상황이 나쁘지 않고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결벽증 수준의 청결을 유지하며 살고
애완동물 없고, 흡연, 파티는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을 최대한 어필해서 보내면 대체로 답장이 잘 오는 편이다.
집을 보러 가는 예약이 잡히면
화려하진 않지만 최대한 깔끔하고 단정하게 입고
나는 친절한 사람이다 라는 마인드로 성심성의껏 대답하고
필요한 질문을 3-4가지 준비해 간다.

문제는 항상 나의 상황과 묻는 사람의 상황이
같을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나는 비자를 받을 때 어떻게 입고 갔고 뭘 챙겨갔고
무슨 얘기를 해서 비자를 잘 받았으니
너도 똑같이 해라 하는 얘기는 도움은 될지 몰라도
정답은 아니다.

학교 입시에서 뭘 입고 가고 무슨 곡을 부르고 하는
조언들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 조언을 나만 들은 것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잘 붙는다.

나에게 조언을 해준 사람들은
최대한 자기의 잘 됐던 경험을 내게 알려주는 거니까
너무나 고마운 일이지만
반대로 그 방법 때문에 일이 잘 성사됐다는 보장도 없고
한쪽으로만 편향된 경험은 건너편을 보지 못하게 한다.

주식이 딱 그렇지 않나.
누군가 조언을 해줬던
내가 조언을 구했던
결국엔 내 의지로 결정하는 거니까
돈을 벌던 잃던 책임은 나에게.
그리고 나에게까지 온 조언이라면
이미 늦은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시험을 보던, 원하는 집을 못 얻게 되던
가능하면 내가 어땠고 뭐가 장점이었고
왜 안됐는지를 메일로던, SMS로던 물어본다.

지난번 원하는 집을 지원해서 집주인과 약속을 잡고
차를 마시고 대략 90분 정도의 화기애애한 미팅을 마치고
난 당연히 성사될 줄 알았는데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최대한 친절하게 "왜 나를 선택하지 않았느냐?"라고 물었고
그 역시 내게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그냥 느낌이 넌 그 집에서 오래 살 것 같지가 않다고.
인생이 이렇다.

전에 살던 집을 내놓고 집주인과 함께
세입자 후보들을 만났을 때
집주인에게 당신은 세입자를 뽑을 때 뭘 제일 중요하게 보냐고 물었다.
처음엔 내 질문에 좀 난처해하더니
대답을 해줬다.
1. 정말 경제력이 있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서류
2. 호감이 가는가
3. 옷차림이 어떤가
이 외에 몇몇 기준이 더 있었지만
집주인은 얼마나 호감이 가는 사람들인지를 제일 먼저 본다고 했다.

외국인청에 비자를 받으러 가거나 연장하러 가면
눈물 콧물 다 쏟고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특히 뉘른베르크가 그리 부유한 도시가 아니라서 그런 건지
요구하는 서류도 많고
기준도 높아서 특히 힘들다는 얘기가 많다.
그런데도 난 언제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비자를 연장해왔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요구하는 기준을 간신히 맞춰 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살갑게 대해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저 우리를 담당하는 직원이 언제나 친절했을 뿐이다.
물론 우리도 최대한 예의 바르게 얘기하고
준비를 잘해갔고.
얼추 행정이 끝나고 나서
궁금했던 질문들을 몇 가지 했는데
그 사람 역시도 대하는 사람마다 태도가 다르다더라.

카더라 통신이라는 말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경험해본 것도 아니고
어디선가 풍문으로 들은 어렴풋한 얘기들을
악의 없이 조언이라고 해주는 사람들도 많고
그런 얘기들을 필터 없이 걸러 듣지 못하는 사람은 더 많다.

조언을 구하는 건 좋다.
다만 그 조언은 그저 조언일 뿐
책임져주지 않는다.
조언은 조언으로 듣고
너무 믿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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